애플을 서비스 기업이라고만 부르면 무엇을 놓치게 될까. 애플은 애플 ONE 같은 서비스 묶음 상품을 내놓았고, 서비스의 중요성도 커졌다. 그렇다고 애플을 서비스 기업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한 이벤트에서도 워치와 아이패드 같은 제품군이 함께 강조됐고, 그 제품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가치도 크다.
기업을 하드웨어 기업과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하나로 나누면 애플의 일을 설명하기 어렵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고, 그 둘이 만나는 제품 경험을 설계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 애플을 부르는 말은 ‘IT 제품을 디자인하는 기업’이다.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하나의 경험으로 묶는 기업이라는 뜻이다.
문턱과 분리 시장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을 여기서는 ‘문턱 모델’이라고 부른다. 면도기 회사가 면도기를 통해 고객을 들이고 면도날을 계속 판매하는 방식과 닮은 면이 있지만, 애플의 기기 가격은 저렴한 진입 상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기기를 구입한 뒤 그 기기와 잘 맞는 전용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분리 시장’은 특정 기기를 산 고객과 그 기기에서 작동하는 전용 제품이 만나 만든 시장이다. 독점과 같은 말은 아니다. 독점은 시장의 지배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고, 분리 시장은 시장을 어떤 조건으로 나누어 설계했는지를 가리키는 저자의 표현이다. 이 둘을 법적 판단처럼 바꾸어 쓰면 안 된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질레트의 면도기와 면도날도 이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역시 기기 보급과 전용 콘텐츠를 결합해 별도의 시장을 만들려는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사례가 같다는 뜻이 아니라, 기기와 콘텐츠를 함께 설계하면 고객이 들어오는 문턱과 머무는 이유를 동시에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네 가지를 함께 확인한다
어떤 기업이 비슷한 전략을 검토한다면 네 가지를 따로 적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고객이 기기를 넘어야 하는 문턱은 무엇인가. 둘째, 문턱을 넘은 고객에게 어떤 전용 서비스와 경험을 주는가. 셋째, 다른 제품으로 옮길 때 고객이 실제로 부담하는 전환 비용은 무엇인가. 넷째, 사업자가 자신이 만든 시장의 가격·접근·유통 규칙을 어디까지 통제하는가.
이 네 항목을 적으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고객에게 필요한 전체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만든 시장의 규칙도 설계할 수 있다. 동시에 고객의 선택을 좁히거나 다른 사업자의 접근을 막는다는 비판도 함께 생긴다. 영향력이 클수록 편리함과 통제의 양면을 같이 봐야 한다.
디지털 제품이 기본이 된 시대에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하나만으로 리더가 되기 어렵다는 생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다만 모든 기업이 둘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경험을 누구의 제품과 묶을지, 어떤 문턱을 만들고 어떤 선택을 열어 둘지 판단하는 일이 먼저다.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네 번째, 다섯 번째 사과가 될 기업은 무엇을 파는지만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이 들어오는 문턱과 그 안에서 누리는 제품 경험을 함께 디자인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한다. 사과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