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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과 Microsoft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저자: 고경만 (해경, haegyung) · 출처: 브런치 채널 · 최초 발행: 2018-06-03 · 개선 정본 판본

기업 활동을 사회적 가치와 별개로 보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 활동은 사회에 가치를 만들고, 수익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이 내놓는 기술 발표도 제품 목록만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읽어 볼 수 있다.

2018년 Google은 I/O를, Microsoft는 Build를 열었다. 두 행사는 개발자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두 회사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먼저 당시 발표 요약 영상 두 편을 보았다.

https://youtu.be/lR2tJxRqYKc

https://youtu.be/NeF0zpT4gNE

Microsoft의 발표 시작은 “가능성과 책임”이라는 말로 읽혔다. 기술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커질수록, 그 일을 만드는 사람의 책임도 함께 커진다는 뜻처럼 들렸다. 이 해석은 당시 발표를 본 내 감상이다.

구현된 현실

두 발표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AR이라는 말이 전면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Google은 Computer Vision이라는 말을, Microsoft는 Mixed Reality라는 말을 사용했다. AR이 개별적인 기술 이름이라면 Computer Vision은 더 종합적인 개념이고, Mixed Reality는 생활에 가까운 표현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기술을 설명하던 말이 점점 구체적인 장면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기술이 특별한 전시물이 아니라 삶에서 쓰이는 도구가 되면, 사람들은 기술 이름보다 그 기술과 함께 사는 방식을 더 많이 말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삶

두 발표의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었다. 당시 Google Duplex가 화제가 되었고, Microsoft는 기술이 업무에 적용되는 모습을 광고로 보여 주었다.

https://youtu.be/NeF0zpT4gNE?t=3m21s

AI는 기술실 안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에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방식, 건강을 관리하는 방식, 식품을 생산하는 방식, 미용실을 예약하는 방식까지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Microsoft 발표의 문장도 인상적이었다.

“내일은, 오늘에 있습니다.”

이 문장은 가능성을 말하지만, 가능성이 곧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생활 속에 들어올수록 그 기술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같이 물어야 한다.

모두의 인공지능

당시에는 AI의 민주화라는 표현도 보였다.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AI를 만들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Google은 ML 키트를, Microsoft는 AI 개발 도구를 발표했다. Google Cloud와 Microsoft Azure의 컴퓨팅 자원도 소개했다. 두 회사가 더 많은 외부 개발자와 함께하려는 흐름으로 보였다.

이것은 2018년 발표를 보고 한 판단이다. 실제 생태계의 영향이나 각 회사의 현재 위치를 이 글에서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구를 누구에게 열 것인가라는 질문은 지금도 남는다.

잊지 말아야 할 기반

새로운 기술을 말할 때 스마트폰, 유비쿼터스, IoT, 데이터 같은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기술들은 더 이상 매번 뉴스의 주제가 아닐 수 있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기반이 되었다.

2018년에는 인터넷 위에 스마트폰과 데이터가 올라왔듯, 그 위에 인공지능과 구현된 현실이 올라갈 것이라고 보았다. 기술이 삶에 깊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기술에 대해 말하기보다 기술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반을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가능성과 책임

기술이 삶에 가까워질수록 IT 업계에는 윤리적 성찰이 필요하다. 당시 Microsoft의 사티아 나델라는 지능형 클라우드와 지능형 엣지의 발전이 개발자에게 기회뿐 아니라 책임도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길남 박사는 기술을 쉽게 포용하는 사회에서 그 효과를 통제하는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발언과 GDPR에 관한 당시의 논의를 보며, 기술을 공학으로만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적·인문적 질문도 함께 있어야 한다.

Google I/O에서 말한 디지털 웰빙도 같은 방향으로 읽혔다. 스마트폰이 주는 자극이 지나치다면 줄일 필요가 있다. 서비스 기획자는 푸시 알림을 줄이면서도 사용성을 유지해야 한다. 알림을 많이 보내는 것이 곧 좋은 서비스라는 보장은 없다. 사용자의 피로와 서비스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기획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미래 선언만은 아니다. 알림 하나를 줄이고, 사용자가 언제 피로를 느끼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기능과 자극적인 기능을 구분하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할 수 있다.

2018년 당시 내가 본 IoT 허브의 후보도 변하고 있었다. 한때는 늘 전원이 켜져 있고 집 안의 중심에 놓인 냉장고가 그 자리를 노렸다. 이어 Alexa와 Google Home 같은 스마트 스피커가 등장했고, 화면을 더한 스마트 디스플레이와 iPad도 생활의 중심 장치를 두고 경쟁하는 듯했다. 냉장고에서 스피커로, 다시 디스플레이로 이어진 흐름은 허브의 모양보다 사람이 어느 장치를 가장 자연스럽게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AI가 사람의 말을 듣고 대신 예약하며 생활의 일부를 맡기 시작한 모습에서 나는 더 논쟁적인 가설도 떠올렸다. 이것은 단순히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의 역할을 닮아 가는 ‘인공적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람을 모방하는 기능이 나타났다는 관찰과, 그 존재를 독립된 주체로 볼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그래서 2018년의 나는 이 인공적 사람을 어떤 관계 속에서 활용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맡길지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구현된 현실을 서비스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넣을 것인지도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기술을 넣기 위해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활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기술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있을 때, 혁신은 미래의 가능성을 멀뚱히 지켜보는 일이 아니라 어떤 미래를 만들지 선택하는 일이 된다.

독자의 맥락과 여백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당신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질문과 선택의 맥락을 자기 노트에 기록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