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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 대하여

저자: 고경만 (해경, haegyung) · 출처: 브런치 채널 · 최초 발행: 2018-04-30 · 개선 정본 판본

내가, 당신이, 우리의 소비 행위는 어떤 행위일까?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을까? 나는 물건만 산 것이 아닐 수 있다.

“나는 시계를 샀다.”

이 문장에서 해석을 멈추지 않고 그 이면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본질을 향하는 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란 내 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런데 욕구는 사람마다 다르다. 열 명이 같은 시계를 샀다고 해도 열 명의 마음이 똑같이 작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시간을 확인할 기능이 필요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래 쓸 물건을 원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 시계를 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좋아했을 수도 있다.

같은 상품을 고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그 마음을 살펴보는 몇 가지 길은 있다. 기능이 필요했는지, 어떤 욕구를 채우려 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느낌을 강화하려 했는지 나누어 보는 것이다.

나는 그 열쇠 중 하나가 ‘존재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소비 전체를 설명하는 법칙이 아니라 내 주장이다.

내가 모셨던 스승이기도 한 심리학자 황상민 박사는 『대통령과 루이비통』에서 노트북을 바꾼 경험을 썼다. 그는 맥북 에어로 바꾼 뒤 카페에서 노트북을 꺼낼 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꼈다고 한다. 책 15쪽에 나오는 경험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문장을 빌려 생각하면, 소비 행위는 존재감의 확장 또는 강화 행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물건을 얻는 일과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거나 보여 주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장나라의 음반을 샀다고 해 보자. 나는 음반을 산 것일까?

나는 CD만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CD가 주는 다른 무언가를 샀다. 장나라를 좋아하는 내 욕구를 충족시켜 줄 무언가를 산 것이다. 나는 장나라 씨의 팬이다. 음반을 사면서 장나라의 팬이라는 정체성과 존재감을 확장하고 강화했다. 그래서 그 구매는 내게 단순한 물건의 획득이 아니었다.

물론 모든 구매가 이런 방식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어떤 물건은 정말 기능이 필요해서 산다. 어떤 구매는 우연히 이루어지고, 어떤 구매는 다른 사람의 권유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래도 구매 뒤에 남는 마음을 한 번쯤 살펴볼 수는 있다.

최근에 내가 산 물건 하나를 떠올려 보자.

먼저, 그 물건의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본다. 다음에는 그 물건으로 채우고 싶었던 욕구를 적어 본다. 마지막으로 그 물건을 가진 내가 어떤 사람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는지 적어 본다.

세 설명 중 하나만 정답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가장 맞지 않는 설명도 골라 보는 편이 좋다. 그래야 소비를 너무 빨리 심리 하나로 단정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소비를 이렇게 바라보고 싶다. 물건을 샀다는 문장 뒤에는 한 사람의 욕구와 정체성, 그리고 존재감이 함께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내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 조금 더 잘 보이기 시작한다.

독자의 맥락과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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