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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혁신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만 할 때입니다

저자: 고경만 (해경, haegyung) · 출처: 브런치 채널 · 최초 발행: 2018-12-11 · 개선 정본 판본

2018년 12월 10일, 한 택시 기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그분에게도 우리처럼 가족과 삶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까지 판단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제가 느낀 슬픔과 문제의식을 기록하려 합니다.

저는 ‘~만’이라는 어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 너무 좁은 결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 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만 하지 않을까. 더 늦춰서는 안 되겠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같은 얼굴이 아니다

디지털 혁신이 일어나면 산업의 경계가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더 편리한 서비스를 만나고, 어떤 사람은 기존의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카풀과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편의점의 자동화를 보며 변화의 방향을 생각했습니다. 이 사례들이 모든 산업의 미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이 너무 자명하다고 썼습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이 문장은 조건과 근거가 빠진 강한 단정입니다. 자동화가 어떤 일을 바꾸는지, 실제로 일자리가 얼마나 줄거나 바뀌는지는 산업과 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변화가 누군가에게 비용을 떠넘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습니다.

혁신을 말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서비스와 효율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변화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사람에게 무엇이 남는지도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전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당시 제가 요구한 것은 사회안전망, 기본소득, 로봇세였습니다. 이 세 제도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공통점은 변화로 손해를 볼 사람이 기댈 제도와 문화적 장치를 먼저 준비하자는 데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를 변화에 대한 반대로만 설명하면, 피해를 말하는 사람을 방해자로 만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변화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두려워합니다. 안전망은 혁신을 멈추는 브레이크라기보다, 사람들이 변화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바닥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혁신가만을 위한 요구도 아닙니다. 변화로 피해를 입는 사람에게 필요한 장치이고,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기댈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을 함께 보기

저는 지금의 변화가 일자리를 더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과거에 어떤 변화가 일자리를 늘렸다는 이유만으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이 역시 전망이지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그래서 두 상황을 나눠 생각해봅니다.

첫째, 변화가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경우입니다. 이때도 사회 탄력성을 높이는 제도는 크게 해롭지 않습니다. 사람은 직업을 옮기고, 돌봄이나 교육을 받고,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변화가 기존 일자리를 줄이는 경우입니다. 이때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피해는 한 사람의 적응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변화의 피해가 커질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엄청난 해악’은 바로 이 비대칭을 가리킵니다. 준비한 선택의 비용보다 준비하지 않은 선택의 비용이 클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혁신가의 목소리

기존 세계를 벗어나 더 좋은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좋은 기술과 서비스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탄력성을 키울 장치도 함께 요구해야 합니다. “나는 혁신을 만들 뿐, 그 결과는 사회의 몫”이라고 선을 긋는 순간 혁신은 다른 사람의 삶을 재료로 삼게 됩니다.

무엇을 요구할지는 각 제도의 설계와 근거를 더 따져야 합니다. 기본소득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 로봇세의 부담과 재원이 무엇인지, 사회안전망이 누구에게 닿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글은 그 정책들의 효과를 증명하는 글이 아닙니다. 변화의 수혜를 말하는 사람이 피해의 책임도 함께 말해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변화는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변화의 속도만이 아닙니다. 변화가 만든 손실을 누가 감당할지, 다시 시작할 발판을 어떻게 만들지, 그 질문을 함께 공론장에 올리는 일도 선택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의 맥락과 여백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당신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질문과 선택의 맥락을 자기 노트에 기록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