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오랜 역경의 시간을 성취의 시간으로 바꾼 해였다. 2018년은 역경과 성취가 이어져서 힘이 넘치는 해처럼 느껴졌다. 정치권에서는 적폐와 보복이라는 말이 누군가를 향해 오갔다. 시작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다이나믹했다.
그때 업계에서는 애플이 시카고에서 교육 이벤트를 열었다. 나는 그 발표에서 교육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경험했다. 우리 다음을 위한, 우리가 계속되기 위한 아이디어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 연인,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추석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전 달을 바라보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은 사람을 지켜 주는 등불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달이 꽉 차 밝게 비추는 밤이면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춤추고 놀았을 것이다. 우리가 추석이라고 부르는 날에는 그런 오래된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2017년이 우리에게 대단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2018년에도 그에 못지않은 일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의 하늘과 강과 산에 평화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펼쳐지기를 바랐다.
한 해의 쌀을 수확하는 추석에 성취와 실패를 함께 바라본다. 우리는 곧 지난 시간 동안 키운 쌀을 수확한다. 어떤 쌀은 잘 자랐을 것이고, 어떤 쌀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쌀은 우리에게 영양분이 된다.
성취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실패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성취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그렇다고 모든 실패가 자동으로 좋은 영양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픈 실패를 다시 바라보고, 무엇을 배울지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의 쌀을 두 가지로 나누어 떠올려 보자. 잘 자란 쌀 하나. 아직 쓰고 거친 쌀 하나. 잘 자란 쌀에서는 무엇을 계속하고 싶은지, 쓴 쌀에서는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적어 보자.
내가 활동하는 스타트업과 IT 업계에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런 사람들은 업계 밖에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우리가 계속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예상하고, 기대하고, 믿는다. 우리를.
지금 옆에 여러분을 따뜻하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만분의 일초라도.
실패의 씁쓸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외로운 길을 같이 걸어 주면 좋겠다. 어두운 길을 보름달이 밝혀 주면 좋겠다. 곧 겨울이 온다. 여러분의 손이 시릴 때 나도 시린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언제든 편히 불러 달라. 겨울에 먼저 부를 사람 한 명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에게 안부를 건네는 일은 거창한 성취가 아니어도, 서로의 어두운 길을 잠깐 밝혀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추석은 ‘노는 날’이다. ‘일하는 날’이 아니다.
왁자지껄하고 즐거운 추석이 되기를 바란다.